Chapter 968
유사의 말에 일순 말을 잃었다.
‘장군이라니?’
신 노야가 장군 출신이라는 말.
그리고 어머니를 배신하고 사라졌다는 말.
저 말이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대체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노야가 장군이 되었었단 말인가. 유사의 말을 듣고 연신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콰드득-!!
“크악!”
노야가 손으로 유사의 얼굴을 잡아 바닥에 꽂았다.
“너는 언제나 그랬지만.”
쾅-! 쾅-! 세 번을 더 박으니 기막을 쳐놔도 사방이 진동할 수준이었다.
“입이 쓸데없이 가벼워. 그 같잖은 혓바닥이 언제나 문제라는 말이다.”
쾅-!!!
마지막으로 한 대를 박고 나서 그대로 머리칼을 잡고 들어 올린다.
“커흑…헉….”
유사가 고통 어린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크으…”
삐그덕거리는 유사를 보며 신 노야가 피식 웃었다.
웃음을 보는데 어딘가 소름이 끼친다.
섬뜩함이 감도는 것에, 혹여 살기라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순전히 분위기 만으로도 위압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하.’
헛숨을 속으로 터뜨렸다.
강한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날 쥐잡듯 패는 건 물론이요 유사를 저리 가지고 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 노인네. 진짜 도사 맞아?’
문제는 저 양반이 도가의 웃 사람이란 것이다.
흐르는 대로 살며 넓은 아량과 성품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위대한 도인들 틈에서도.
화산의 매화선을 제외하면 가장 존경받는 도인이자 영웅이 저 양반이거늘.
지금 보면 그냥 동네 양아치가 따로 없었다.
“네…네놈….”
유사가 지친 듯한 목소리를 낸다.
입가에는 핏물이 흐르는 게 보인다. 고통이 상당한 모양이다.
그냥 바닥에 박는 정도로 저리 다칠 것 같진 않은데. 저토록 아파 보이는 이유는 아마.
‘지면이 문제가 아니라. 도기를 담아 쥐어팼으니까겠지.’
내리칠 때 바닥에 도기가 담기는 게 보였다.
그냥 일반적으로 때린 게 아니라 상당히 조절해서 팼다는 의미다.
‘미친 노인네야.’
그 짧은 반복에 무수히 많은 깨달음이 뭉쳐있다.
기운의 압축. 응용. 세밀한 조절력까지.
사용처는 폭력이나 그 안에 담긴 깔끔함과 섬세함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에선 얼핏 보인다.
도인치고 뭐 저렇게 거친 기운을 사용하나 했더니.
‘반대야.’
도인 중에서도 노야의 기운을 깔끔하고 단정하다.
그저 그걸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날카로운 검이 될 수도 있고, 그냥 흩날리는 꽃잎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하….’
거기까지 생각하니 퍽 웃기다.
‘저런 걸 보면서 뭘 깨닫고 있는 거지?’
상대를 박살 내는 상황에서 이런 걸 깨닫고 있음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때.
“유사.”
“크흐….”
신 노야가 비틀 거리는 유사를 보며 말한다.
“중요한 건 어차피 하나야. 언제나 그렇듯. 네놈에겐 할 건지 안 할 건지. 딱 그것만 중요할 뿐이니, 시답잖은 짓은 그만하고 대화나 하지 않겠느냐.”
“대화는…. 무슨…배신자와 나눌 말 따윈….”
“주인이 널 언제까지 곁에 둘까.”
“…”
의지를 절대 꺾지 않을 것 같던 유사가 갑자기 노야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말을 꺼내는데.
“무슨 헛소리를….”
말을 뱉는 유사의 음성이 참으로 묘하다.
떨림이 느껴지는 것이 마치 정곡을 찔린 것 같았다.
그걸 노야 또한 느낀 걸까. 웃음을 지우지 않고 노야가 유사에게 말을 잇는다.
“네놈도 알고 있잖느냐. 감이 좋은 네가 이를 모를 리 없지.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있는 게야.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이미 떠난 네놈이 뭘 안다고…!”
“그게 아니라면, 왜 네가 혼돈을 두고 구태여 야월로 돌아왔을까.”
“…!”
노야의 말에 유사의 눈이 커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끌끌끌.”
놀란 유사의 반응에 신 노야가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뒷방 늙은이가 됐다고는 하나. 나도 눈과 귀라는 게 존재하느니라.”
스윽.
말과 동시에 노야가 유사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놓으면 당장이라도 난동을 피울줄 알았지만, 유사의 반응은 잠잠했다.
“무저갱이 사라져 야랑이 아닌 다른 장군들이 한참은 시끄러울 때인데. 가장 바삐 움직여야 할 네놈이 왜 여기에 있을까.”
“…”
“그걸 생각해 보면, 네놈도 알고 있는 것 아니더냐.”
“…닥쳐라.”
“주인이 무언가 바뀌길 바라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닥쳐…!”
끄그극-! 밧줄이 점점 풀려나간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상황을 살펴보고 있을 즈음.
“바뀐다고 한다면. 네놈이 가장 먼저 바뀔지 모른다는 것까지. 그걸 네놈은 다 알고 있는-.”
“입 닥치라고!”
콰드드득-!!!
유사가 노호를 터트린다.
그 순간 밧줄이 끊어지며 녀석의 몸이 해방됐다.
구봉이 그걸 보며 급히 검에 손을 뻗었고.
나도 반응하듯 심장에 힘을 줬다.
하지만.
“유사.”
불안해하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사는 밧줄이 풀려 몸을 일으켰어도 노야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본래 가장 찬란했을 월야의 지배자야.”
눈가에 투기와 살기는 역력했지만.
그럼에도 노려보기만 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 노야는 이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유사에게 끊임없이 말을 내뱉었다.
“어찌 이리도 추레해졌느냐. 바라던 걸 잊으니, 지녔던 털의 색도 바라지 않았–.”
“수작 그만 부리고 말 똑바로 해. 화연.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신 노야의 말을 끊어내며 유사가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며 귀를 쫑긋했다.
화연. 유사가 노야를 부르는 호칭이 묘했기 때문이다.
“쥐 죽는 듯 숨어나 살 것이지. 지금 나타나 같잖은 짓을 벌이는 이유가 뭐냐고.”
유사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다가간다. 놈에게 달린 꼬리가 점점 덩치를 키워가고.
달린 연녹색의 머리칼이 조금씩 길어진다.
그걸 보며 노야가 말했다.
“유사.”
말하는 노야의 눈은. 유사를 향한 두려움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네게 제안을 하나 하마.”
“네가? 내게?”
“내가 네놈이 바라던 꿈을 이루어주마.”
유사가 바라던 것? 그걸 언급하니 유사의 표정이 바뀐다.
노야가 무얼 말하려 하는지 알아차린 기색이 엿보였다.
“…너.”
“유사. 이 땅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느냐.”
“…!”
신 노야가 말을 꺼내들자.
“내가. 그걸 이루어 주마.”
착각일지 모르나, 주변의 공기가 순간 고요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